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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진, 나쁜 너

i&i 2017. 9. 14. 22:03

너, 라고 발음하면 세상 모든 너는 '너' 에게 와서 갇힌다.

담배 연기 같은, 창틀의 먼지 같은, 깨진 유리조각 같은, 커피사탕 같은, 산마르코 광장에 고이는 바닷물 같은, 찰박찰박하는, 터질랑말랑 하는, 목련꽃잎에 내려앉은 봄 햇살 같은, 새벽 복도에 혼자 앉아 있는 우유팩 같은, 잘못 배달된 엽서 같은, 나비 날개 같은, 새벽기도회가 열리는 교회 의자 같은, 자전거 페달 같은, 액자 위의 얼룩 같은, 비껴 앉은 사람의 옆얼굴인, 귀밑을 스치는 바람결인,

계절은 가을이고 이국의 노을 속에 흐르는 수어사이드 이즈 페인레스 그리고 스위스産 오르골에서 흐르는 러빙 유.

할 수만 있다면 '러빙 유'를 당의정처럼 입고 너의 입속으로 들어가 삼켜지고 싶어. 나는 너의 내장기관을 따라 흘러가다 너에게 흡수되어 너를 망쳐놓고 싶어. 나는 심하게 훼손된 사람, 더 이상 가망 없는 봄날을 그리워하는 한심한 족속. 나는 나쁜 너에게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