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고 삶과 죽음.
이 오래된 문학의 주제는 폐기하고 싶을 만큼 낡고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것을 사유하며 그리고 반복해서 명멸해간다. 살면서 죽음은 여러 번 찾아오기에. 죽음을 목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거의 죽음과 가까운 순간들을 맞는 것까지. 누군가 새 출발이라는 말을 할 떄 우리는 그 사람이 살아내었을 어떤 죽음의 순간을 떠올린다. 삶은 그토록 얇은 얼음장이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그렇다고 막막한 시작이 있었던 뒤로 갈 수도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 균열이 일어나면 그 균열의 파장은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 모두를 균열로 몰아넣는다. 에밀 시오랑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적인 것은 그 균열의 순간을 온전히 자신 속에 담아두지 않을 때 온다. 균열로부터 파생된 것들이 삶의 방향 없는 주인으로 들어앉은 느낌. 그 무질서의 느낌 속에서 한 인간은 완벽한 개인이 된다. 누구도 누구의 고통을 흉내내지 못한다. 누구도 누구의 느낌을 재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완벽한 개인이 되는 순간은 어떤 절대적인 순간이다. 그리고 한 인간의 일생에서 어떤 순간은 그가 영원이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들어온다. 영원이라는 공간은 그러나 그다지 단단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어떤 의미에서는 없는 공간이다. 그곳은 다만 믿어야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영원은 가난한 노동조합이며 그 조합원들이 살고 있는 산동네다. 그곳은 언제라도 철거가 될, 믿는 자만이 볼 수 있는 사원이며 한동안만 살 수 있는 사글세 집이다. 시집 역시 그렇다. 순간은 영원이라는 엉성한 공간 안에서 서먹한 퍼즐 조각처럼 널려있다. 이 순간들이라는 퍼즐 조각을 들어올려다 본다. 순간들이여, 그대 들은 시집이라는 영원을 우리에게 설명해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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