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경經처럼 읽던 밤이었지
낯선 문법에 길 잃고 자주 행간에 발이 빠져
시든 줄기 같은 문맥을 잡고, 점자인양 널 더듬거렸지
창틈으로 난입하는 빗소리에 글자들이 번져
점점 눅눅해지는 어둠을 헤치며, 너를 읽어내려갔지
폐허가 된 역사驛舍에서 너의 그림자,
검은 장미 숲으로 떠나는 열차를 기다리며
산문적이었던 삶의 비문非文들을 생각했지
레코드판같이 돌아가는 밤하늘 아래
안개는 가로등 불빛을 한 뼘 비껴 흐르고
역사歷史가 되감겨 와, 가물거리는 한 구절 경을
늘어진 테이프처럼 읊조렸지
마지막 페이지를 새긴 열차는 끝내 오지 않고
어둠의 깊이만큼 經은 또 한 번 두꺼워지는
'.t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은, 1년 (0) | 2017.09.12 |
---|---|
성동혁, 口 (0) | 2017.09.12 |
이제니, 마지막은 왼손으로 (0) | 2017.09.12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0) | 2017.09.08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0) | 2017.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