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를 원했다. 길들이고 싶었다. 거둬들이고 싶었다. 너는 뒤춤에 감춰두었던 당근과 채찍을 야심차게 꺼내들었다. 네가 면전에 대고 당근을 시계추처럼 흔들자 참다못한 그가 말했다. 나는 육식주의자야. 5년 후, 너는 괴혈병에 걸려 잇몸에서 피가 나게 된다. 정신을 차린 너는 채찍을 휘두르려고 폼을 잡았다. 채찍이 쩍쩍 공기를 가르자 참을성 없는 그가 말했다. 나는 마조히스트야. 10년 후, 너는 정부로부터 피 같은 봉급을 받게 된다. 네 입이 뒤춤처럼 부끄럽게 씰룩거렸다. 너는 할말을 잃고 탈 말을 거두었다. 당근과 채찍을 길바닥에 버리며 길든 상태로 비로소 길에 들었다. 20년 후, 너는 누구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온종일 미아역에서 헤매듯 노래 부르게 된다. 그가 된 너는 지하철에 올리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쩝쩝 입맛을 다시게 된다. 바람을 휙휙 가르며 거대한 인공 초원을 달리게 된다. 온몸으로 피를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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